한식은 그저 먹는 음식이 아니라, 철학과 사상이 담긴 종합적인 문화입니다. 특히 색채와 구성 원리에 있어 ‘오방색’과 ‘음양오행’은 한식의 깊이를 이루는 핵심 요소입니다. 오방색은 다섯 가지 색상(청·적·황·백·흑)을 뜻하며, 음양오행 사상은 모든 자연과 인체, 계절, 방향 등이 상호 연관되어 순환한다는 동양 철학입니다. 이 두 요소는 한식의 상차림, 식재료 선택, 조리 방식, 그리고 음식의 색감과 조화까지 폭넓게 영향을 주며, 한식을 단순한 요리가 아닌 조화와 균형의 음식으로 만들어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식의 오방색과 음양오행 사상을 중심으로, 한식이 지닌 철학적 깊이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방색의 정의와 한식 적용
한식의 오방색과 음양오행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방색의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방색은 청(푸른색), 적(붉은색), 황(노란색), 백(흰색), 흑(검은색)을 말하며, 각각 동서남북과 중앙, 계절, 장기, 맛 등을 상징합니다. 청은 봄·동쪽·간·신맛, 적은 여름·남쪽·심장·쓴맛, 황은 중앙·비장·단맛, 백은 가을·서쪽·폐·매운맛, 흑은 겨울·북쪽·신장·짠맛과 연결됩니다.
한식에서는 이러한 오방색을 음식의 색감과 재료에 직접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비빔밥을 구성할 때는 시금치(청), 당근(적), 계란노른자(황), 무(백), 김(흑)을 올려 오방색을 표현합니다. 잡채, 궁중떡볶이, 전통 잔치음식, 사찰음식에서도 오방색의 조화를 유지해 음식이 시각적으로도 풍성해지고, 철학적으로도 균형 잡힌 식단이 완성됩니다.
오방색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건강을 위한 균형 있는 영양 섭취를 도모하는 실용적 기준이기도 합니다. 색상이 다양한 식재료를 골고루 사용할수록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식의 오방색은 전통 철학과 현대 영양학이 만나는 교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양오행의 조리 원리
음양오행은 우주와 인간, 자연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원소(목·화·토·금·수)의 순환과 조화를 설명하는 동양철학으로, 한식 조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 사상에 따르면 모든 것은 음과 양의 상호작용과 오행의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음식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식은 ‘과하지 않음’을 중요한 원리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조리 시 매운맛이 강하면 신맛이나 단맛으로 균형을 맞추고, 고기 요리에는 나물이나 무침류를 함께 곁들여 음양을 조화시킵니다. 계절 식재료를 쓰는 것도 음양오행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겨울에는 몸을 덥히는 음식(양), 여름에는 시원하고 수분이 많은 음식(음)을 섭취함으로써 자연의 기운과 인간의 몸이 균형을 이루도록 돕습니다.
또한 오행은 인체의 오장육부와도 연결되어 있어, 각각의 오장에 맞는 식재료와 맛을 배합하여 건강을 증진시키는 한방 음식도 발달했습니다. 이는 사상체질과도 연결되며, 개인의 체질에 맞는 조리법과 재료 선택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식은 단순한 맛 이상의 ‘맞춤형 음식’으로 진화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식 상차림에 담긴 조화
한식의 오방색과 음양오행 사상은 단지 재료나 조리법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차림 구조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반영됩니다. 전통적인 3첩, 5첩, 7첩, 9첩 반상은 짝수보다는 홀수 중심으로 구성되며, 이는 음양오행의 조화와 불균형의 미학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음식의 수와 배열도 좌우 대칭, 색상 분포, 맛의 강약 등을 고려해 정리됩니다.
밥과 국을 중심으로 한 좌우 반찬 배치는 짠맛과 단맛, 매운맛과 담백함, 기름진 음식과 가벼운 나물 등이 어우러지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곧 오행 간의 균형과 조화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고기 요리가 나온다면 반드시 나물 반찬이나 장아찌가 함께 따라 나와 소화나 기운 흐름을 도와주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한식 상차림은 단순한 ‘많은 반찬’이 아니라, 오방색과 음양오행을 고려한 정교한 구조입니다. 따라서 한식은 그 자체로 전통 철학, 건강, 미감이 융합된 종합 문화이며,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