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맛뿐 아니라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고려한 정갈한 음식문화로, 예부터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이 통용될 만큼 색채와 배치에 깊은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궁중 음식에서부터 일상 식탁에 이르기까지 한식의 플레이팅은 단순히 음식을 담는 행위를 넘어 조화와 질서를 담은 예술적 행위였습니다.
특히 오방색(五方色) 사상을 기반으로 색과 방향, 계절, 오행까지 고려한 음식 배열은 한식 고유의 철학과 미감을 반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식의 색채와 플레이팅 미학을 중심으로, 색의 의미, 조화로운 배치 방식, 그리고 현대 한식에서의 적용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방색과 한식의 색채미학
한식의 색채와 플레이팅 미학은 전통적으로 오방색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방색이란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다섯 가지 색을 뜻하며, 각각 동서남북중의 방향, 계절, 장기, 맛, 감정 등을 상징합니다. 예를 들어, 청색은 봄과 간(肝)을, 적색은 여름과 심장(心)을, 황색은 중앙과 비장(脾)을, 백색은 가을과 폐(肺)를, 흑색은 겨울과 신장(腎)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색채 개념은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한 상차림 안에 다섯 가지 색을 골고루 배치함으로써 영양의 균형뿐 아니라 시각적 조화를 추구합니다. 나물 반찬 하나만 봐도 미나리의 초록, 고춧가루의 붉은색, 무채의 흰색, 김의 검은색, 달걀지단의 노란색 등 색의 배합이 오방색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단순한 미관의 문제를 넘어서, 건강과 조화를 동시에 중시하는 전통 한식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한식의 플레이팅 방식과 원칙
한식의 색채와 플레이팅 미학은 음식의 배열 방식에서도 그 독특함이 드러납니다. 서양의 코스 요리와 달리, 한식은 한 상 위에 여러 음식이 동시에 놓이는 ‘병렬적’ 상차림 구조를 가집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중심과 균형입니다. 밥과 국은 상의 중심부나 아래쪽에 위치하고, 반찬은 양옆과 위쪽에 고르게 배치됩니다. 반찬의 종류가 많을수록 좌우 균형과 색채 조화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궁중요리에서는 상차림의 플레이팅이 더욱 섬세하게 이뤄집니다. 색, 모양, 높이, 질감까지 고려해 접시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야 하며, 음식이 담긴 그릇의 소재나 색도 음식과의 조화를 고려해 선택합니다. 나물류는 일정한 길이와 두께로 썰어 같은 방향으로 담고, 찜 요리는 높이를 살리고, 부침이나 전은 깔끔하게 층을 이루도록 배치합니다. 이러한 디테일은 음식을 대하는 태도이자, 손님에 대한 예로 여겨졌습니다.
최근에는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모던 한식 플레이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통 오방색을 유지하되, 구성 요소를 줄이고 그릇의 디자인과 여백을 강조한 미니멀 스타일이 인기입니다. 이처럼 한식의 플레이팅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여전히 조화와 정갈함이라는 중심 철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현대 한식에서의 색과 조화
현대 한식에서는 전통 색채미학을 기반으로 하되, 이를 시각적 감성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SNS 시대에 접어들면서 음식의 ‘보이는 맛’도 중요해졌고, 셰프들은 한식 고유의 색을 살리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더한 플레이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통 비빔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디쉬는 오방색의 색감을 유지하면서 재료의 배열을 원형에서 사선 또는 나선형으로 바꾸기도 하고, 단출한 한 접시 구성으로도 충분한 시각적 임팩트를 줍니다. 흑임자 소스, 단호박 퓌레, 자색 고구마 칩 등 전통 식재료를 활용하면서도 색을 극대화하는 방식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플랜트베이스 한식, 비건 한식에서도 컬러풀한 채소들이 오방색 개념에 맞춰 조화롭게 구성되며, 접시 위에 펼쳐진 색감은 하나의 회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전통의 철학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의 미감을 따라가는 이런 변화는 한식이 문화와 미학으로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